김장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장독대'입니다. 조선 시대, 각 가정에는 소금, 간장, 된장, 고추장을 보관하는 장독대가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김치를 보관할 항아리를 묻는 장소 역시 장독대 주변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발효 과정을 돕기 위해 자연적인 온도와 습도를 활용했기 때문인데, 장독대가 '천연 발효 냉장고'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김장을 위해 쓰이는 배추는 현재의 모습으로 정착되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품종 개량이 이루어졌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조선 중기까지 한국에서는 오늘날의 결구형 배추(속이 꽉 찬 형태)가 아니라 잎이 퍼져 있는 들배추를 주로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야 결구형 배추가 널리 퍼지며 김치 맛이 크게 변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빨간 김치는 고추가 한국에 전해진 이후부터 만들어졌습니다. 그 이전의 김치는 소금으로만 간을 한 ‘백김치’나 장을 넣은 형태가 일반적이었습니다. 특히, 궁중에서는 하얀 백김치를 선호했는데, 이는 고급스러운 이미지와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김치는 발효보다는 단순히 저장 음식으로 여겨졌고, 맛도 지금과 크게 달랐습니다.
옛날에는 김장을 할 때 달의 모양을 보고 날짜를 정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름달이 지나 기운이 줄어드는 시기를 택했는데, 이는 발효 과정에서 김치가 덜 넘치고 맛이 잘 든다는 민속적인 믿음 때문입니다. 이런 전통은 과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온도와 기압 변화가 발효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은 배추와 무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김장 대신 구할 수 있는 채소를 절여 김치 비슷한 음식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피난김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다양한 채소와 장아찌의 조합으로 맛을 냈습니다. 전쟁의 고난 속에서도 김장을 놓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의 노력은 김치가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김치가 세계로 수출되며, 국제 표준화 기구(ISO)에서 김치의 표준을 정하기 위해 '김치 코드'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2001년 한국은 김치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일본이 주장한 ‘기무치’와의 차이를 강조하며, 김치 제조 과정과 발효 기준을 정했습니다. 이 덕분에 김치는 국제적으로 보호받는 한국의 전통 음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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